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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91:1~16 우리의 거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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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담임목사 댓글 0건 조회 87회 작성일 18-10-0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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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거주지

시편 91:1~16

 

 

우리는 ‘성경’에 있는 수많은 시편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이미 기록된 글을 읽고 있는 것이지만, 시편 91편이 처음 기록되었던 때가 있었을 것이고, 그 고백을 드렸던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시편 91편을 노래했던 시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

그리고 그의 인생 가운데 있을 법한 어려움들이 그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근거로, ‘하나님의 보호’를 이야기 합니다.

 

사실,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러한 고백들을 드렸던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서 이러한 고백들을 보았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배워 아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그리고 배워 알게 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제 삶의 이런 저런 상황 속에 있는 골치 아픈 문제를 풀어내는 ‘공식’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공식으로 풀리지 않는 일들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피난처, 요새, 의뢰하는 하나님이 되시기에 악인들의 혀가 끊어지고, 재앙들이 피해갈 줄 알았는데, 그 공식대로 ‘항상’ 풀리지 않는 삶의 현장도 보였던 겁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모습을 보며, 비웃거나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태도를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는 것은, ‘이렇게 또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경험하게 되는구나...’ 였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오늘 시편 91편처럼 하나님을 고백했던 사람도 있었고, 악인들에게 둘러싸여 고립된 상황에서 나를 구해달라고 부르짖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님은 분명 말씀대로 역사하시지만, 내가 이해하고 내 안에 담겨진 지식 안에 하나님의 역사를 가둘 순 없다!’ 라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선, 시편 91편과 같은 고백을 보면서 계속 나의 현실과 말씀과의 괴리감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도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 그러면 다시 이 시인의 고백을 보시죠.

하나님은 ‘피난처’, ‘요새’,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 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1절입니다.

 

시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그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는 자’,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입니다.

어려운 말입니다. 그냥 대충 보면, 그런가 보다 싶지만, 지존자의 은밀한 곳은 도대체 어디이고, 전능자의 그늘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어디인지 알아야 거주하든, 이사를 가든 할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것을 신학적으로도 풀 수 있겠고, 어휘의 사용처들을 살펴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은밀한’, ‘그늘 아래’라는 말을 주목해 봅니다. 이 시인은 하나님과 나만의 ‘은밀한’ 무언가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펴신 팔로 만들어진 ‘그늘’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나 소중한 사람과 나만 아는 ‘은밀한’ 비밀을 가져본 적 있으실 겁니다.

뜨거운 가을 햇살이 내리쬘 때, ‘어디 그늘 없나’ 하고 주변을 두리번 거리신 적 있으실 겁니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대화’, ‘은밀한 만남’... 있으신가요?

인생의 뜨거움이 있을 때, 숨쉴 수 있는 ‘주님의 그늘’... 찾아본 적 있으신가요?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자리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을 단순히 눈으로 읽어 아는 수준을 넘어, 그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펴신 팔로 만들어 주신 그 그늘 아래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뢰하며 살아갑니다. 

그랬던 시인이 비로소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 요새, 의뢰할 분 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이전에, 신뢰할 분이라고 배워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이전에, 이미 교회당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진 만큼,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풍성해져야 할텐데 실상도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혹시 그 원인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의 신앙고백’을 ‘오늘 내 삶의 공식’으로 만들어, 결국 내가 얻고자 하는 바를 얻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레 들여다 봅니다.

 

시편 91편이 묵상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한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 요새, 의뢰하는 분이 되길...

이를 위해, 나와 그 분의 은밀한 만남, 그리고 그 분의 그늘이 우리 삶의 기반이 되는 ‘거주지’가 되어야 할 겁니다.

 

문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가득했던 한 신앙선배가 삶의 어려움 한 복판에서 고백했던 고백이 떠오릅니다.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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